전체 글28 이브닝 근무: 하루를 견디는 나만의 방식 10:30 _ 출근 전, 마음을 다잡는 시간아침은 늘 정신없다. 정신이 없기 때문에 아침이 이렇게 시작되는 건지, 아니면 아침에 정신이 있는 게 이상한 건지 모를 지경이다. 그리고 전날 이브닝 근무를 한 나의 아침은 항상 늦게 시작된다. 눈을 떴는지도 모를 정도로 비몽사몽한 채로 씻고, 옷을 입고, 텀블러에 물을 채운다. 그러다 문득, 주방 조명 아래에서 멈춰 선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도 괜찮을 수 있을까?" 침대 안에서 핸드폰 화면을 켜고 일정표를 확인하고, 근무조와 라인업을 본다. 마음이 가라앉기도, 덜컥 긴장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같은 음악을 듣는다. 같은 향수를 뿌린다. 나도 모르게 무너질지도 모를 오늘 하루를 위해, 반복되는 의식을 만들었다. 그건 마치.. 2025. 5. 13. 후배 간호사에게 해주고 싶은 단 한 마디 [하루] 나도 너처럼 힘들었다 처음 병원에, 병동에 들어왔을 때를 기억한다. 손에 쥔 건 교과서와 체크리스트뿐이었고, 머릿속엔 '틀리지 말아야지'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실습 때 많이 봐왔던 그 수많은 병원과는 정말 달랐다. 내 병원이 될 곳이라서 그런 걸까? 병동에 발을 내딛었다. 복도 끝까지 울리는 알람 소리, 쏟아지는 호출, 선배의 말투 하나에도 숨이 턱 막혔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퇴근길에 집에 도착할 즈음 주차장에서 엉엉 울었다. 터지는 눈물을 막을 수 있는 게 그 어떤 것도 없었다. 남들 다 겪는 일이라지만, 나한테는 처음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 나에게는 정말 매일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지금 나와 함께 일하는 너를 보며,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본다. 환자 곁에 조심스레 다가가며 눈치를 살피.. 2025. 5. 12. 왜 나는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을까? [질문] 오늘도 퇴근길에 나에게 묻는다 퇴근길, 붉은 신호등 앞에 멈춰 섰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매일 새벽같이 출근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말에 상처받고, 동료와의 갈등에 지치고, 쉬는 날엔 무기력하게 누워 있다가 끝나는 삶. 이게 다인데... 이게 모든 것인 것 같고 또 이 모든 게 반복된다. 때로는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너무 낯설어서 피하고 싶어진다. 그런데도 출근한다.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다음 날 또 다시 유니폼을 입는다. 이건 의무일까, 책임일까, 아니면 익숙함일까. 그리고 매번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한다. 환자와 마주하며 그들이 필요한 것을 탐색하고 그들의 위로가 되어주지만 또다시 그들의 한마디에 상처받고 마음을 다쳐온다. 엎친.. 2025. 5. 11. 출근이 너무 싫었던 그날, 내가 나를 다독인 방식 [프롤로그] 퇴근보다 출근이 더 버거운 날간호사로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이상할 수 있지만 힘든 근무 중이 아니라 '출근 직전'이다. 눈을 떴을 때, 몸은 분명 쉬었는데도 가슴 한편이 묵직하다. 그날의 조가 어떤지, 함께 일하는 동료가 누구인지, 전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시 이불속으로 숨고 싶어진다. 아마 고3 수험시절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실제로 한동안은 매일 아침 알람을 끄고 5분만 더를 반복하며, 온몸에 말을 걸었다. “오늘 하루는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날일수록 막상 병동에 도착하면 그럭저럭 지나간다. 문제는 그전,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마음이 지쳐 있다는 것. 간호사라면 누구든 공감할 포인트이다. 여기.. 2025. 5. 10. 인간관계에 지친 당신, 내 방식을 만들어 이겨내라 업무보다 힘든 건 인간관계였다교대근무의 피로도, 응급상황의 긴장감도 결국 지나간다. 그런데 마음에 박힌 말은 이상하게도 계속 남는다. 정말 이상하다. 일의 크고 작음은 언제나 모든 게 일에 맞춰져 있어야 하는데 그 작은 말 한마디가 더 나를 힘들게 한다. 특히 함께 일하는 동료 중 유독 불편한 사람이 있을 때, 그 근무는 두 배로 피곤하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감정이 오가는 공간에서 일한다.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 의사, 팀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업해야 한다. 그래서 단 한 사람이라도 관계가 틀어지면, 전체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문제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나는 퇴근을 해도 그 사람과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말투, 표정, 눈빛까지 하나하나 곱씹게 된다... 2025. 5. 9. 무너지지 않게 감정을 다루는 법 쌓이지 않게 하는 게 아니라, 쌓여도 터지지 않게 하는 법간호사의 하루는 정말 예측할 수 없다. 어떤 날은 웃으며 퇴근하지만, 어떤 날은 울컥한 감정을 꾹 누르며 병원을 나온다. 예측한다고 하는 것이 어불성설인 직업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그런 날들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런 일을 계속 지속하다 보면 누적되는 감정은 마치 물탱크 같다. 하루하루는 괜찮은 듯해도, 어느 순간 넘치기 직전까지 차오른다. 그리고 위험함을 감지한다. 나는 그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감정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넘치지 않게 흘려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만의 '멘털 루틴'이 필요했다. 출근 전마다 나는 오늘 어떤 감정을 마주할지 가볍게 상상한다. 짜증, 분노, 무기력... 미리 마음속에 떠올려보면 막상 닥쳤을 때.. 2025. 5. 8. 식사가 아닌, 생존이었던 간식과 루틴들 출근 전 밥, 안 먹으면 불안하고 먹으면 탈난다교대근무를 하면서 가장 먼저 흔들린 건 식사였다. 특히 이브닝 근무와 나이트 근무 전 식사는 늘 고민이었다. 안 먹으면 근무 중 저혈당처럼 어지럽고, 먹으면 배가 불러서 컨디션이 떨어진다. 대충 먹는 건 답이 아니고, 제대로 먹자니 소화가 안 되고, 안 먹자니 힘이 없다. 그리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식사양도 달라진다. 하루에도 수없이 머릿속에서 식사 타이밍과 종류를 계산한다. 출근 두세 시간 전에 먹는 게 가장 낫다는 걸 알면서도, 그 타이밍을 놓치면 그냥 굶거나 편의점 김밥 하나로 버티는 날도 많았다. 한때는 단백질 위주의 도시락을 직접 싸가기도 했고, 어떤 날은 삶은 달걀 두 개에 커피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 어떤 방식도 완벽.. 2025. 5. 7. 무너진 감정, 다시 세우는 루틴 피로보다 감정이 무서운 날이 있다 간호사의 일을 하다 보면 몸이 힘든 날보다 마음이 무너지는 날이 더 많았다. 이 직업은 언제나 단순한 체력 소모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환자의 죽음을 지켜본 날, 가족의 분노를 감당해야 했던 날, 동료의 날 선 말 한마디에 하루가 무너진 날도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힘듦에도 몸은 익숙해졌는데, 마음은 매번 새로 무너졌다. 아무 일도 아닌 듯 복도에서 걸어 나가야 했지만, 내 육체는 힘듦 없이 뚜벅뚜벅 일지 몰라도 속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렇게 나는 깨달았다. 피로는 쉬면 회복되지만, 감정은 방치하면 곪는다는 걸. 그래서 나만의 감정 관리 루틴이 필요했다. 분노가 올라오는 순간엔 화장실로 가서 물을 튼다. 침착해지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어떤 날.. 2025. 5. 6. 간호사의 수면은 기술과 루틴, 전략이다 깊게 자는 건 포기하고, 잠드는 기술을 익혔다간호사라는 직업이 그렇다. 교대근무가 필수인데, 교대근무를 시작하고 나서 내 수면은 철저히 깨졌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것처럼 살았고, 아침 근무 다음엔 일찍 자야 했고, 야간 근무 다음엔 낮잠도 사치였다. 가장 힘들었던 건 '잠에 드는 감각'이 망가졌다는 거다. 자려고 누우면 몸은 피곤한데 머리는 멍하고, 분명 누워 있었는데도 한숨도 못 잔 날이 많았다. 간호사란 직업 정말 쉽지 않다. 다른 건 다 차치하고서라도 수면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나는 수면 자체를 바꾸기로 했다. 너무 슬픈 일이지만 깊은 잠을 자려고 애쓰는 대신, 어떻게든 "빨리 잠드는 법"을 익히는 쪽으로. 그때부터 내 머리맡에는 늘 똑같은 향초와 같은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 몸에 루틴을 .. 2025. 5. 5.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