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0 _ 출근 전, 마음을 다잡는 시간
아침은 늘 정신없다. 정신이 없기 때문에 아침이 이렇게 시작되는 건지, 아니면 아침에 정신이 있는 게 이상한 건지 모를 지경이다. 그리고 전날 이브닝 근무를 한 나의 아침은 항상 늦게 시작된다. 눈을 떴는지도 모를 정도로 비몽사몽한 채로 씻고, 옷을 입고, 텀블러에 물을 채운다. 그러다 문득, 주방 조명 아래에서 멈춰 선다. 그 짧은 순간에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도 괜찮을 수 있을까?" 침대 안에서 핸드폰 화면을 켜고 일정표를 확인하고, 근무조와 라인업을 본다. 마음이 가라앉기도, 덜컥 긴장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아침 같은 음악을 듣는다. 같은 향수를 뿌린다. 나도 모르게 무너질지도 모를 오늘 하루를 위해, 반복되는 의식을 만들었다. 그건 마치 내 안의 방어막을 하나하나 덧대는 작업 같았다. 이 작은 루틴이 없다면 나는 이미 출근 전부터 무너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 마음을 이 작은 수단으로나마 단장을 해놔야 긴장을 풀고 일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그냥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이건 이래서 그런 거고 저건 그래서 그런 거야. 이렇게 말하며 나의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냥 씩 웃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네가 하루만 간호사로 일해봐."
16:45 _ 근무 중, 멘털을 지키는 숨구멍
근무 중에는 스테이션 한가운데 호출음이 끊이질 않는다. 누군가는 아프고, 누군가는 화나 있고, 누군가는 너무 조용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혼란스러움과 고요함이 공존하는 병동,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는 상황이다. 여기서 나는 그 모든 감정을 오가며 내 감정은 접어둔다. 저 아래로 잠깐 조용히 묻어둔다. 그래서 나는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버린다. 무표정한 얼굴로 주사를 놓고, 침착한 목소리로 환자에게 설명을 한다. 하지만 이런 조절에도 가끔은 너무 버거운 순간이 있다. 나를 돌봐야 하는, 내 감정을 저 밑으로 묻어두었음에도 거기까지 내 힘듦이 전달되어 버린 그런 날. 그런 날엔 나는 화장실로 간다. 핸드워시를 짜서 손을 천천히 문지르며, 내 호흡을 들여다본다. 물소리로 머리를 비우고, 거울 속 나와 눈을 맞춘다. "지금도 괜찮아. 할 수 있어." 그 한마디가 참 이상하게도 다시 돌아갈 힘이 되어준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별것 아닐 수 있는 이 1분이, 나에게는 하루를 견디는 생존의 기술이다. 이게 왜 나의 생존기술이 되었냐고? 그건 나도 알 수 없다. 그냥 어쩌다가 발견된 나의 루틴이다. 버거움이 내 감정을 잡고 뒤흔들 때, 도저히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려 일을 할 수 없을 때 당신만의 구조 루틴을 꼭 만들길 추천한다.
22:10 _ 퇴근 후, 감정을 정리하는 나만의 의식
퇴근길은 늘 혼자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집까지 가게 된다. 집에 가는 지하철 안의 그 한 시간이 나를 조용히 간호사가 아닌 그냥 나 자신으로 되돌려 놓는 시간이다. 그러나 너무 힘들었던 날은 하루 동안 겪은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울기도 한다. 그러면서 마음은 요동친다. 내가 잘못하지 않은 것에 대한 억울함, 내가 잘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 더 잘할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 이런 모든 감정들이 나를 휘감는다. 그러면서 그 감정들이 지속되면 더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촛불을 켠다. 은은한 향이 퍼지는 동안, 손을 씻고 나서 하루를 적는다. 말이 아닌 글로라도 내 하루를 정리하지 않으면, 그 감정이 머릿속에서 썩기 시작한다는 걸 안다. 오늘 있었던 일 중 가장 괜찮았던 순간 하나를 반드시 써넣는다. "환자가 나를 보고 웃었다", "선배가 내 일 처리 좋았다고 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다. 그렇게 적고 나면, 나는 내가 오늘도 잘 버텼다는 걸 알게 된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면, 내일이 조금은 덜 두렵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나는 '살아내고' 있다. 이런 의식으로 나를 보살피고 있다. 내 감정들을 보살피지 않으면 나를 나답게 지켜내지 못할 것 같음을 언젠가부터 느끼고는 내가 만든 최적의 루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