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지 않게 하는 게 아니라, 쌓여도 터지지 않게 하는 법
간호사의 하루는 정말 예측할 수 없다. 어떤 날은 웃으며 퇴근하지만, 어떤 날은 울컥한 감정을 꾹 누르며 병원을 나온다. 예측한다고 하는 것이 어불성설인 직업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힘든 건, 그런 날들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이런 일을 계속 지속하다 보면 누적되는 감정은 마치 물탱크 같다. 하루하루는 괜찮은 듯해도, 어느 순간 넘치기 직전까지 차오른다. 그리고 위험함을 감지한다. 나는 그걸 뒤늦게야 깨달았다. 감정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넘치지 않게 흘려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그래서 나만의 '멘털 루틴'이 필요했다. 출근 전마다 나는 오늘 어떤 감정을 마주할지 가볍게 상상한다. 짜증, 분노, 무기력... 미리 마음속에 떠올려보면 막상 닥쳤을 때 덜 흔들린다. 이게 막상 그 일을 맏닥드리게 되면 이 방법이 꽤 괜찮은 컨트롤 방법임을 인지하게 된다. 또, 감정이 올라올 땐 일단 5초 동안 호흡부터 고른다. 심장부터 터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이 작은 템포 하나가 하루를 살린다. 쌓이지 않게 막는 게 아니라, 쌓여도 터지지 않도록 여유를 확보하는 것. 내 감정을 잘 달래줘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이 행동을 시작하게 된다. 여유를 확보한다는 것이 어쩌면 대단히 어려운 기술일 수 있으나 결국 나중엔 알게 된다. 이건 기술이 아니라 훈련이다.
감정노동의 무게를 나 혼자 들지 않기로 했다
처음에는 내 감정조차 업무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간호사들이라면 모두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참고 참다 보면 익숙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감정은 눌러 놓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숨긴 감정이 나를 잠식했다. 그래서 나는 감정을 숨기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한 건 '말하기'였다. 동료에게 짧게라도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 “오늘은 좀 지친다” 한마디를 꺼내는 연습이었다. 그 한마디, 간단한 한마디게 그렇게 위안이 될지 몰랐다. 그게 나를 스스로 객관화하게 했다. 그리고 가끔은 병원 밖 친구에게, 이 일과 무관한 사람에게 내 감정을 털어놓는다. 아무 설명 없이 말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게 마음의 통로를 열어줬다. 또, 나는 내 감정을 받아쓰기 시작했다. 노트 앱에 두세 줄이라도 써두면 그 감정은 어딘가로 옮겨진다. 버리는 게 아니라 잠시 내려놓는다는 느낌. 혼자 다 안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 감정노동을 진짜 노동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게 멘털 루틴의 두 번째 원칙이다. 처음엔 너무 어렵다고 생각했다. 왜 어렵다고 생각했는지 정말 알 수 없지만 시도하는 것이, 행동하는 것이 이상하게 어려웠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내 감정을 표현한 뒤 웃는 내 감정을 발견하곤 정신을 차렸다. 버리는 게 아니라 잠깐 내려놓는다는 느낌으로 내 힘듦을 살짝 내려놓는 것, 어렵지만 쉬운 일이었다.
나를 돌보는 감정의 ‘루틴화’
감정은 컨트롤이 아니라 리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날의 감정 상태는 대부분 루틴과 연결돼 있었다. 아침에 5분 일찍 일어나 마음을 정리하고, 점심에 10분간 조용한 공간에서 숨을 고르며, 퇴근 후 짧은 산책을 하는 것. 이 모든 게 감정을 다루는 힘을 길러줬다. 별거 아니지만 나는 이제 감정을 특별하게 다루지 않는다. 매일 일정한 방식으로 반복해 다루기 때문에 오히려 감정이 내 삶을 휘젓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떤 날은 '기분이 가라앉는 날'임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아예 기대치를 낮춘다. 그날은 완벽하려 하지 않고, 그냥 '무탈하게 버티기'를 목표로 삼는다. 너무나 힘들고 고된 하루를 보냈다면 그리고 하루의 끝에는 내가 나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오늘도 잘 버텼어.” 이 말 하나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도 루틴이다. 감정은 언젠가 무너지지만, 루틴은 다시 나를 세운다. 루틴이 나를 세우면 감정은 무너지지 않으려 더욱 애쓴다. 나의 멘탈 루틴은 '내 감정도 나의 일'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되었고, 지금도 나를 단단하게 지켜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 멘털을 관리할 여력이 없는 많은 간호사들이 있다. 내 일이 멘털을 잠식해 버리는 많은 동료들... 그들에게 나의 멘털을 조용히 한번 뒤돌아 봐 달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러면 울고 있는 내 감정을 발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