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보다 힘든 건 인간관계였다
교대근무의 피로도, 응급상황의 긴장감도 결국 지나간다. 그런데 마음에 박힌 말은 이상하게도 계속 남는다. 정말 이상하다. 일의 크고 작음은 언제나 모든 게 일에 맞춰져 있어야 하는데 그 작은 말 한마디가 더 나를 힘들게 한다. 특히 함께 일하는 동료 중 유독 불편한 사람이 있을 때, 그 근무는 두 배로 피곤하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감정이 오가는 공간에서 일한다. 환자뿐 아니라 보호자, 의사, 팀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업해야 한다. 그래서 단 한 사람이라도 관계가 틀어지면, 전체 분위기가 무거워진다. 문제는 그것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런 불편한 상황이 생기면 나는 퇴근을 해도 그 사람과의 장면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말투, 표정, 눈빛까지 하나하나 곱씹게 된다. 그러다 보면 피로는 배가 되고, 다음 출근이 두려워진다. 하지만 그 사람이 바뀌지 않는 이상, 내가 바뀌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감정 필터를 만들기로 했다. 상대의 말이 들어왔을 때, 바로 반응하지 않고 '하나 걸러서 듣기'를 연습했다. 예를 들어 공격적인 말투에도 “이건 그 사람의 스타일일 뿐”이라며 내 안으로 덜 들여보내는 식이다. 그리고 기분이 나빴던 순간을 퇴근 후 바로 메모했다. 그 순간에 담긴 감정은 메모장에 남기고, 나는 벗어나는 방식이었다. 관계는 당장은 해결되지 않아도, 감정은 관리할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간호사에게 이 감정관리는 생명을 다루는 일을 하고 있기에 더욱 중요하고 필요하다. 나의 한순간의 감정에 휘둘려 정말 중요한 걸 놓칠 수 있기에 나는 나만의 방식을 꼭 만들어 내야만 했다.
나를 미워하는 게 아니라 그들도 힘든 거라 믿었다
나에게 유독 날카롭게 굴거나, 늘 싸늘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간호사의 태움, 이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처음엔 나를 싫어하나보다 생각했다. 자존감은 떨어지고, 매일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위축됐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은 사람에게 다른 동료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순간부터 시야가 넓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싶었다. 그 후로는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그런 스타일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다. 물론 불쾌감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나를 탓하지 않게 됐다. 정말 단순한 것인데, 그것만으로도 한결 편해졌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감정의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조금 더 건설적으로,, 그 사람의 말투에 곧바로 상처받지 않도록, ‘저건 그 사람의 방어기제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거리 두기를 했다. 특히 자존감이 낮아지는 날에는 의도적으로 나 자신을 다독이는 말을 메모장에 적었다. 그게 아주 유효했다. "나는 잘하고 있다", "나는 그 사람의 문제까지 책임질 필요 없다." 간호사라는 일은 늘 다른 사람을 돌보지만, 그 돌봄의 우선순위에서 나 자신이 빠지면 안 된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게 얼마나 깨닫기 힘든 일인지 간호사가 아니면 알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다. 그 돌봄의 우선순위에 나 자신을 절대 빼놓아선 안된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는 건 어쩌면 피할 수 없지만, 내가 나에게는 가장 친절해야 한다는 걸 배우는 중이다. 나를 누구보다 아낄 때 다른 사람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을 모든 간호사가 알길 바란다.
정답은 없지만, 내 방식은 있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깨달은 건, 어떤 관계든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낼 수 없고, 그렇다고 늘 갈등 속에 살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이 상황을 피할까"보다, "어떻게 이 감정을 관리할까"에 집중하게 됐다. 나의 감정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진작 이것에 집중했을 것이다. 나의 감정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감정을 관리할 것인가... 예를 들어, 그 사람이랑 같은 근무인 날엔 출근 전에 나에게 말한다. "오늘 그 사람 말에 휘둘리지 말자." 마치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감정 방어를 위한 마음가짐을 다지는 셈이다. 근무 중엔 필요 이상의 대화는 피하고, 필요한 협업에는 최대한 객관적인 톤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그날 좋았던 순간을 일부러 떠올린다. 괜찮은 동료와 나눈 웃음, 환자의 고마운 말 한마디, 내가 잘 처리한 상황 하나. 이렇게 '좋았던 조각들'을 붙들면 하루 전체가 그 사람의 말로 덮이지 않는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렇듯, 간호사에게도 결국 중요한 건 감정의 방향을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관계는 상대의 몫이지만, 감정은 내 몫이니까. 정답은 없지만 내 방식은 있다. 이 과정에서 내 방식을 찾아내는 것! 이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시도해 보고 이겨낼 수 있다. 그리고 아직 감정관리에 서투른 간호사에게 조언한다. 감정을 관리하는 나만의 방식을 찾기를... 그걸로 내 삶의 발란스를 잘 찾아야 내가 하는 일과 내 삶을 좀 더 나은 쪽으로 발전시킬 수 있고 그 가운데 나의 성장이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