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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리통 있는 날의 교대근무 [Before] 출근 전, 진통제 하나에 의지한 아침 아침 6시 30분.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떴을 때, 이미 아랫배가 싸늘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그 특유의 묵직하고 짓누르는 통증이 천천히 몸을 잠식해 온다. 생리 첫날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버겁지만, 간호사에게 ‘컨디션 난조’는 근무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 생리휴가란 말은 현실과 동떨어진 단어처럼 느껴질 뿐, 특히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에겐 더더욱 그렇다. 결국 나는 오늘도 익숙한 루틴대로 진통제를 삼키고, 따뜻한 물로 넘긴다. 온몸은 무겁고 아프지만, 오늘 하루 돌보게 될 환자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날따라 옷을 고르는 시간도 길어지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바나나 하나를 겨우 입에 물고 나온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진.. 2025. 5. 21.
💌 야간근무를 앞둔 너에게 보내는 편지 📍 야간근무를 시작하는 너에게오늘도 야간근무를 앞두고 있는데, 문득 네 생각이 났어. 몇 년 전, 첫 야간근무를 앞두고 불안에 떨던 너를. 그날의 넌 얼마나 초조했는지 기억나. 낯선 야간 병동, 낮보다 더 고요한 긴장감, 그 긴장감에 끝에 가장 날 무섭게 하는 건, 응급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 근무표에 '나이트'라고 적힌 날이 다가올수록 하루하루 밤잠도 설쳤지. 스테이션의 조명이 유독 더 차갑게 느껴지고, 모니터의 소리조차 심장을 조이는 것 같았던 그 밤. 동료의 발소리도, 기계의 경고음도 모두 평소보다 크게 들렸던 그날 밤의 공기. 작은 실수 하나에도 모두가 나를 바라볼까 봐, 조심스레 움직였던 너의 손끝. 낮근무 때와는 전혀 다른 무게감이 네 어깨를 눌렀지. 그래도 너는 그 병동에 들어섰.. 2025. 5. 20.
돌봄이 일상이 될때, 나를 잊지 않으려는 노력 🪞 누군가를 돌보며, 나는 나를 잊었다어느새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내 하루의 기본값이 되었다. 당연히 이게 나의 업이니 그것이 당연하다. 환자의 호흡, 활력, 통증, 상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꼼꼼히 체크하면서, 정작 나는 나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오늘 아침은 무엇을 먹었는지조차 떠올려보지 않는다. 누군가를 돌보는 나의 일에 몰두하게 되면 나를 잊어버리는 것이 당연하게 된다. 누군가의 상태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나의 컨디션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한 약 시간을 기억하면서도, 내 생리통엔 진통제 한 알 챙기지 못한 날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점점 잊혀가는, 잊을 수밖에 없는 나의 삶들을 다시 뒤돌아봐야 한다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선생님, 오늘도 감사했어요." 환자의 보호자.. 2025. 5. 19.
보호자의 항의, 세 개의 다른 시선 [장면]보호자의 항의가 쏟아진 순간점심시간을 겨우 넘긴 오후 2시였다. 겨우 커피 한 모금 마신 채로 병실로 호출됐다. 거기에 보호자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아직도 약이 안 나왔냐"는 질문에 나는 순간 얼어붙었다. 오전 회진에서 담당교수님의 추가 투약 설명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약은 환자에게 도달되지 못하였다. 분명 담당 레지던트 선생님에게 금일 투약 오더할 예정임을 확인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처방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쏟아지는 항의, 주변의 시선, 서 있던 다리까지 떨렸다. [시선 1 - 나의 감정] '억울하고 당황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억울했다. 오전에 새로운 투약이 있을 것이라는 교수님의 설명이 있었지만 그 후 언제 투.. 2025. 5. 18.
처음 ‘간호사’라 불렸던 날, 못 잊을 그 단어 🕧 12:05, “간호사님 맞죠?” 처음으로 “간호사 선생님”이라는 말을 들었던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니 정말 잊을 수 없다.정식으로 첫 출근한 날, 이름표를 단 유니폼을 입고 병동 복도를 걸었을 때, 나는 마치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처럼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 그날 아침, 거울 앞에서 유니폼 매무새를 수없이 고치고, 인계장의 글자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떨리는 손으로 스테이션에 섰다.불안함, 떨림, 그리고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이 뒤엉켰다.처음 인사를 건넨 환자분은 할머니였다. 주사 바늘이 무서워 눈을 질끈 감고 계셨고, 나는 옆에서 조심스레 손을 잡아드렸다. 그 순간 할머니가 내게 말했다. “간호사 선생님, 손이 따뜻하네.” 나는 놀랐다. ‘간호사’라는 호칭이 내게 너무 크고 낯설게 들렸.. 2025. 5. 17.
밥보다 어려운 화장실, 간호사의 일상 1] 언제부턴가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를 본다.누구나 사람이라면 생리적인 욕구는 자연스럽다. 하지만 간호사로 일하며 내가 가장 자주 참는 건 '화장실'이었다. 왜 화장실을 참는지 이해가 안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혹은 바빠서겠지 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도 얼마나 바쁜지까지는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급하게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화장실에 가려던 찰나 호출벨이 울리고, 환자가 넘어진다. 이러한 상황의 연속에서 화장실? 글쎄... 응급상황이면 화장실은 정말 사치를 넘어선 금기다. 다행히 응급상황에서는 화장실 가고싶은 생각이 나오다가도 다시 들어가고 생각이 기억속에서 조차 사라진다. 처음엔 잠깐 참는 게 일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잠깐이 몇 시간으로 늘어나고, 어느샌가 근무 내내 화장실을.. 2025. 5. 16.
내가 사과했던 순간들, 사실은 억울했다 ❓ 왜 나는 늘 ‘미안합니다’라고 말했을까.간호사로 일하며 내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죄송합니다”였다. 약이 늦어도, 수액이 안 맞아도, 보호자가 예민해도, 내가 실수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먼저 사과했다. 환자가 버럭 소리를 질러도 “죄송해요”라고 반사적으로 대답했고, 의사의 지시가 누락되어도 “제가 다시 확인하겠습니다”라고 책임을 덮었다. 나는 원래 이렇게 죄송하다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결단코 아니었다.미안하다는 말은 쉽게 잘 하지 못해 오히려 주변에 미안할 정도였다.그런 내가 어느 날은 심지어 보호자가 침대에 음료를 쏟아놓고도 내게 화를 냈는데, 나는 또 사과했다. 그때 들었던 질문이 내 머릿속을 맴돈다. “왜요? 그게 왜 간호사 잘못이에요?” 맞다. 나도 몰랐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쉽게 미안하.. 2025. 5. 15.
나는 왜 그렇게까지 참았을까 [기억] 나도 처음엔 참지 않았다간호사로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참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합리한 일에는 억울했고, 무례한 말에는 속상했다. 환자가 언성을 높이면 깜짝 놀랐고, 선배의 말투가 거칠면 눈물이 고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내 방식은 솔직함이었고, 표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반응은 병동에서 흔쾌히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감정적인 사람”, “감정 조절이 안 되는 간호사”라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주변의 시선이 변하면서 나도 조금씩 입을 다물기 시작했다.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화가 나 있었고, 인사하듯 말하지만 마음은 울고 있었다. 점점 나는 감정을 접는 법을 익혔다. 말하지 않으면 일이 더 편해졌고, 웃는 얼굴이 더 안전하다.. 2025. 5. 15.
슬픈 일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끝내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병원은 늘 이별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환자의 입퇴원이 반복되고 환자를 영원의 공간으로 보내기도 한다.환자는 언제나 우리를 떠난다. 하지만 그 사실에 무뎌지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처음 환자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보호자의 울음, 침대 위의 차가운 손, 눌러 담은 인계 메모까지. 모든 것이 선명하게 남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런 일은 반복되었고, 어느새 내 일이 되어버렸다.그리고 손은 침착하게 장례절차를 안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 어딘가는 여전히 덜컥거린다.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게 퇴근했는데, 집에 와서 식탁에 앉은 순간 눈물이 터진다. 오늘 하루도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었고, 나는 그 마지막을 지켜봤다. 그건 결코 '일'처럼만 다.. 2025.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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