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오늘도 퇴근길에 나에게 묻는다
퇴근길, 붉은 신호등 앞에 멈춰 섰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아직도 이 일을 하고 있을까?" 매일 새벽같이 출근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말에 상처받고, 동료와의 갈등에 지치고, 쉬는 날엔 무기력하게 누워 있다가 끝나는 삶. 이게 다인데... 이게 모든 것인 것 같고 또 이 모든 게 반복된다. 때로는 지하철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이 너무 낯설어서 피하고 싶어진다. 그런데도 출근한다.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다음 날 또 다시 유니폼을 입는다. 이건 의무일까, 책임일까, 아니면 익숙함일까. 그리고 매번 하던 일을 다시 시작한다. 환자와 마주하며 그들이 필요한 것을 탐색하고 그들의 위로가 되어주지만 또다시 그들의 한마디에 상처받고 마음을 다쳐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오늘 내가 계속 케어하던 환자를 하늘로 보냈다. 마음은 더 떨어질 곳 없이 깊은 곳으로 보내져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대하며 다른 일을 해야 한다. 다른 환자들의 약을 주고 수술을 보내고 수술하고 온 환자들을 보살펴야 한다. 여기서 나는 잠깐 넣어둔다. 내 감정을 꺼내어보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꺼낼 시간조차 없다. 이렇게 보내는 것이 간호사의 일상이다. 이런 날은 밥을 먹을 시간도 없을 뿐더러 무언가를 입에 넣고 싶은 생각이 단 한순간도 없다. 오늘도 나는 퇴근길에 그 질문을 꺼낸다.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도대체 왜 이 일을 하고 있니?"
[대답]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꽤 단단하다
처음엔 그저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 혹은 내 의지라기보다는 엄마의 권유로, 그저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간호대를 선택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일에 '내 감정'이 섞이기 시작했다. 처음 심장이 멈췄던 환자를 인계하며 손이 떨렸던 날, 보호자가 내게 인사하며 눈물 지었던 순간, 무심코 말한 위로에 환자가 "고마워요"라고 했던 그 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단지 그냥 나의 일을 묵묵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그 순간들은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해낸 게 무엇이든 간에, 그 자리에 내가 있었다는 것이 내 마음에 무게를 남긴다. 그렇게 나는 십칠 년을 보냈다. 십 년이 넘으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그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그곳에 있으면서 나는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꽤 단단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무너지지 않은 날보다, 무너진 날에 다시 일어난 내 모습이 내 진짜 얼굴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말이다. 무너진 날에 다시 일어나고 있는 나의 삶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주었고 나를 지탱하는 큰 힘이 되고 있다. 나는 아직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이 일을 '견디고' 있는 게 아니라, 이 일을 '살아내고' 있는 것 같다.
[반박]
그런데, 정말 계속할 수 있을까?
가끔은 두렵다. 이 일을 20년, 30년 더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내가 나를 다독이는 방식이 이대로 괜찮을까? 나의 감정은 계속 잘 관리될까? 내 감정에 나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환자의 고통에 무뎌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이렇게 나를 지킬 수 있을까? 가장 무서운 건, 이 일을 계속 하면서 내가 점점 '내 감정'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어느 날, 너무 힘든 하루였는데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마치 기계처럼 움직였고, 퇴근 후에도 텅 빈 마음뿐이었다. 이런 감정을 느껴버린 것이 정말 큰 위험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는 때는 신규 간호사가 아니라 한참을 병원에서 고생하고 난 뒤의 일이다. 그래서 더 그게 위험하다. 내 마음이 기계처럼 움직이게 돼버린... 마음이 마음답지 못한 그런 날이 오는 게 그게 정말 두려웠다. 일의 힘듦은 사실 두 번째다. 육체적으로 힘든 건 항상 그런 것이고 어느 정도 적응마저 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내가 어느 날 기계처럼 변해버린 걸 느낀 그런 날은 내가 정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감정이 없다면, 그건 간호사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환자에게 가져야 할 감정이라는 것이 이 일을 지속하면서 점점 기계처럼 변해버렸다면 그게 다른 사람을 케어하는 간호사라는 일을 하는 나에게 벌어진 가장 위험한 일이 아닐까?
[결론]
오늘도 묻는다, 그 질문이 나를 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아직도 답을 모르겠다. 정확히는 답을 찾지 못하는게 정상적인 것 같다. 어떤 날은 확신이 있고, 어떤 날은 그만두고 싶다. 그럼에도 매일 스스로에게 묻는다. 왜 계속하고 있는지, 오늘은 무엇이 나를 병동으로 끌어냈는지. 그 질문이 때론 날 지치게 하지만, 또 그 질문이 날 사람답게 만든다. 적어도 나는 나를 속이지 않는다. 감정이 없어진 날, 나는 멈출 준비를 할 거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감정이 있다. 오늘도 피곤했고, 속상했고, 외로웠지만 누군가의 손을 붙잡으며 나도 무너졌다. 그래서 나는 내일도 유니폼을 입을 것이다. 아직은, 내가 사람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