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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초 그 순간 – 응급상황에서의 간호사의 선택 📍 첫 문단 – 응급벨, 평온을 찢고 들어오는 소리응급은 언제나 예고 없이 발생한다. 그 순간 병동의 공기는 단번에 바뀐다. 평온하던 병실이 급하게 숨을 죽이고, 간호사들의 동공은 팽창한다. 나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하는 나 자신을 느낀다. 간호사라면 다 같은 느낌일 것이다. 책으로 배운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나를 먼저 움직이게 하는 건 직감이다. 환자의 상태를 이미 알고 있는 듯, 다리로 뛰고 손은 준비된 움직임을 향한다. 갑작스러운 혈압 저하, 의식 소실, 호흡곤란—30초 안에 이 모든 걸 판단하고 대응해야 할 때가 많다. 환자의 상태를 보면 응급상황으로 가는 길인지 완벽한 응급인지가 판가름 난다. 수많은 시나리오가 머리를 스치지만, 정작 그 순간엔 단 하나의 선택만이 가능하다... 2025. 6. 1.
🗣️ 환자에게 닿는 말, 간호사의 언어를 배웠다 첫 문단 – "괜찮으세요?"라는 질문 하나도 조심스럽게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던졌던 말들이,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괜찮으세요?”라는 질문조차 환자에게는 때론 무심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한 환자의 표정 덕분이었다. 수술 직후 통증으로 힘겨워하던 분에게 그렇게 묻자, 그분은 고개를 돌리며 속삭였다. “하, 제가 괜찮아 보이세요…?” 그 말에 나는 '헉'하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내 의도는 따뜻한 배려였지만, 그분에겐 상처로 들렸던 것이다. 내가 말투를 잘 못했나? 라는 생각을 계속하게되었고 수술을 하고 난 환자에게 상처로 다가왔을 내 말투가 조금 죄송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말을 하나 고르더라도 더 신중해지기 시작했다. 단어를 줄이기보다 감정을 줄이기로 했다. .. 2025. 5. 31.
낯선 병동에서 이제 익숙해진 병실, 그리고 깊은 울림 처음 병동에 들어섰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다 처음 병동에 발을 들인 날, 내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낯설었다. 기계마다 쉴 새 없이 깜빡이는 불빛, 복도마다 퍼지는 특유의 소독약 냄새, 매트리스 위에 무표정하게 누워 있는 환자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보호자들의 조심스러운 눈빛. 복도 끝에서는 알람이 울리고, 어딘가에선 호출벨이 끊임없이 켜졌다. 그 속에서 나는 마치 잘못 들어선 공간에 있는 사람처럼, 손끝 하나 제대로 움직이기도 조심스러웠다. 처음으로 배정받은 임무는 단순한 수액 확인이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일이지만, 당시의 나는 그 투명한 액체 속에서도 실수를 찾아내는 것 같아 괜히 숨이 막혔다. 손은 땀에 젖어 있었고, 환자가 묻는 간단한 질문에도 더듬거리며 얼버무리기 바빴다. 나의.. 2025. 5. 31.
간호사의 하루, 작지만 절대 작지 않은 일들 📍 환자의 한숨 속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 식사는 환자의 상태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신호다. 환자가 숟가락을 드는 순간, 그 손의 떨림, 음식의 선택, 씹는 속도, 남긴 양까지 모든 것이 간호사의 눈에는 정보로 들어온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식사처럼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환자의 기력과 마음, 몸 상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끔은 식사 시간이 끝난 뒤, 병실을 돌며 조용히 물어본다. “오늘은 좀 드셨어요?” 그때 며칠 동안 거의 먹지 못하던 고령의 환자가 미소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 “밥 한 숟갈 더 먹었어요.” 그 한마디에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나도 모르게 숨이 후- 하고 새어 나왔다. 식사를 한다는 건 단지 배를 채우는 행위가 아니다. 삶을 지속하겠다는 의지이자, 몸이 살아 움직인다는.. 2025. 5. 29.
간호사의 하루를 지탱하는 세 가지 마음 1. 환자의 아픔을 내 몸처럼 느끼는 마음아침마다 병동에 들어설 때면, 나는 가장 먼저 환자들의 얼굴을 살핀다. 어제보다 창백해진 분은 없는지, 밤새 통증에 시달린 건 아닌지, 혹은 조금이라도 편히 주무신 건지. 환자의 얼굴빛과 표정, 눈동자와 호흡 속도 같은 작은 변화들이 간호사에게는 중요한 신호가 된다. 말은 하지 않아도 그들의 몸이 보내는 언어는 분명하다. 그래서 하루의 첫걸음은 ‘인사’가 아니라 ‘관찰’이다. 어떤 날은 눈빛 하나에도 마음이 쓰이고, 침묵이 길어지면 이유를 찾고 싶어진다. 간호사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환자의 미묘한 변화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반응하는 것으로. 체온을 재고, 혈압을 확인하고, 수액을 점검하는 일은 겉으로 보기에 단순한 루틴처럼 보일지 모른.. 2025. 5. 29.
🗣 나의 하루, 세 개의 대화로 남다 😊 첫 번째 대화 – “언제 퇴원해요?”오전 8시 35분, 첫 회진 직후였다. 병실을 돌며 활력 징후를 체크하던 중, 6인실 창가 앞의 한 환자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선생님, 저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까요?” 축처진 어깨에 힘없는 말투, 그 말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었다. 오랜 입원 생활에서 오는 지침, 회복에 대한 조급함, 그리고 가족과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모두 섞인 질문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하지만 전부 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힘든 마음을 다 안다고 말하는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위로겠지만 간호사는 그렇지 않다. 때문에 알면서도 바로 답할 수 없었다. 주치의의 퇴원 판단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몇 가지 검사 결과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신 말.. 2025. 5. 27.
세시선: 간호사의 손끝에서 전해지는 위로 📍 첫 장면 – 말없이 전해진 안심의 손길처음 병실에 들어섰을 때, 그 환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내가 건네는 말에도 반응이 없었다. 퉁명스러운 태도와 단절된 눈빛에 처음엔 긴장부터 앞섰다. 통증 때문일까, 병원 환경에 대한 불신 때문일까, 아니면 그냥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체온을 확인하고 수액 라인을 점검했다. 그저 평범한 일과 중의 한 장면이었지만, 그 순간 환자의 눈이 나를 따라 움직이는 걸 느꼈다. 작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고, 그제야 그가 처음으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무 말도 없었지만, 나는 느꼈다. 내 손끝에서 전해진 온기가 그에게 도달했다는 것을. 우리는 늘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때로는 말보다 강한 메시지가 손끝에서 전해진다.. 2025. 5. 27.
🕰 출근 전, 근무 유형 따라 달라지는 마음 🌤 Day 근무 전 – 눈은 떴지만 마음은 아직 침대에 하루를 여는 간호사의 출근은 언제나 가장 버겁다. 더군다나 데이근무는 다른 근무에 비해 더 더욱 그렇다. 아침 5시 00분, 겨우 눈을 떠 몸을 일으키지만 마음은 여전히 침대에 붙들려 있다. 눈꺼풀은 무겁고, 하루를 온전히 감당할 준비는 되지 않은 채 세면대로 향한다. 일어나서 준비 후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한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더 남아있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앉아 병동에서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면, 미리 긴장감이 올라온다. 어제 내가 보았던 환자들의 상태를 떠올리며 그 환자 상태는 악화되지 않았을까, 오늘 인계받을 일은 어떨까, 큰 이벤트는 없었을까?, 오늘 expire 하는 환자가 오진 않았을까?, 오늘도 무사히 마무리될 수.. 2025. 5. 24.
💡 간호사의 보람, 세 장면으로 기억하다 📍 첫 장면 – "정말 괜찮아요, 선생님" 처음 병동에 투입된 지 일주일쯤 됐을 때였다.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고 두려움이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도 없고 자신감은 바닥을 치던 시절, 무엇 하나도 익숙하지 않아 매일 실수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했다. 어느 날, 수액 교체를 하다 실수로 주사 바늘을 잘못 연결해 수액이 바닥에 쏟아졌고, 환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정신없이 뒤처리를 하던 찰나, 환자가 조용히 말했다. “정말 괜찮아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내 곁에 있어서 마음이 편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 이 상황에 들은 말이 정말 맞는 건가?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들리길 원하는 내 환상인가?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나는.. 2025.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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