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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감정, 다시 세우는 루틴

by 행복한ally 2025. 5. 6.

무너진 감정, 다시 세우는 루틴
무너진 감정, 다시 세우는 루틴

피로보다 감정이 무서운 날이 있다

간호사의 일을 하다 보면 몸이 힘든 날보다 마음이 무너지는 날이 더 많았다. 이 직업은 언제나 단순한 체력 소모 이상의 것을 요구한다. 환자의 죽음을 지켜본 날, 가족의 분노를 감당해야 했던 날, 동료의 날 선 말 한마디에 하루가 무너진 날도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힘듦에도 몸은 익숙해졌는데, 마음은 매번 새로 무너졌다. 아무 일도 아닌 듯 복도에서 걸어 나가야 했지만, 내 육체는 힘듦 없이 뚜벅뚜벅 일지 몰라도 속은 천근만근이었다. 그렇게 나는 깨달았다. 피로는 쉬면 회복되지만, 감정은 방치하면 곪는다는 걸. 그래서 나만의 감정 관리 루틴이 필요했다. 분노가 올라오는 순간엔 화장실로 가서 물을 튼다. 침착해지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그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다. 어떤 날은 인계 시간 직전에 숨을 고르고, 어떤 날은 퇴근길에 이어폰을 낀다. 누구에게 보일 수 없는 감정들을, 나만의 방식으로 꺼내어 정리하고 덮어두는 일. 그게 없었다면, 나는 이미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내가 간호사라서 말하는 게 아니라 정말 간호사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일을 한다. 퍽퍽한 그 일의 고단함을 뒤로하고 무너지지 않기 위한 내 마음을 달래는 일을 또 한다. 그래야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 기어이 그 한계를 넘기 위해 또 다른 루틴을 만들어낸다. 나는 이것이 진짜 간호사가 대단한 이유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감정관리 루틴, 나를 알아주는 시간

환자 가족들이 “고생 많으세요”라고 말해줄 때는 감사했지만, 동시에 마음이 복잡해졌다. 고생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감정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사람을 돌보는 직업이지만, 때로는 감정을 숨기는 일도 포함된다. 웃고 있지만 울고 있는 날도 있고,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서 속으로는 흔들리는 순간도 많다. 공감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따뜻하지만, 때론 그 말이 더 외롭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내 감정을 먼저 인정하는 연습을 했다. 많은 간호사들이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나는 지금 힘들다"라고 솔직하게 말해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일기장, 메모앱, 심지어 병동 바닥에서 혼잣말로라도. 그러고 나면 이상하게 조금 괜찮아졌다. 누가 내 감정을 정확히 알아주지 않아도, 적어도 나는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걸 모르면, 어느 순간 진짜로 무너진다. 그렇게 나는 '공감받으려 하기'보다 '내가 나를 알아주기'를 택했다. 이 업을 지속하다 보면 내가 얼마나 나를 숨겨가며 일하고 있는지 모른 채로 그대로 일하는 사람이 대다수 일 것이다. 내가 그러려고 그러지 않아도 내 일이, 내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걸 깨닫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내가 내 감정을 숨기며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이 환경에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는 단계가 온다면 그건 아마 내가 많이 힘들 때일 것이다. 


감정에도 근육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다

감정은 근육 같다는 말을 어느 날 들었다.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정말 그 말이 진심이 되어 와닿는다. 감정도 다뤄본 사람이 잘 다룬다. 억지로 참기만 하면 터지고, 아무 말이나 하면 상처 준다. 적당히 느끼고, 적당히 흘려보내는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관리하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하루의 끝에 무조건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한다. 잠깐의 독서, 따뜻한 차 한 잔, 아니면 샤워하면서 혼잣말이라도. 누군가에겐 별거 아닐 수 있지만, 그 10분이 없었다면 나는 병원에서 사람이 아닌 기계처럼 버텼을지도 모른다. 감정은 내 일이기도 하지만, 내 삶이기도 하다. 처음 간호사가 되면 감정이 내 삶이기도 한 것을 절대 느낄 수 없다. 느낄 시간과 여유와 감정이 없다. 내 일에 내가 적응해 나가는데 몸은 이미 모든 것을 써버렸기 때문이다. 상처받는 말들을 여기저기서 듣지만 그걸 치유해 낼 시간도 여유도 감정도 없다. 그래서 나의 감정 따위는 잠깐 저 밑에 열쇠를 걸어 잠가둔다. 그리고 일을 지속한다. 그래서 감정을 관리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 감정을 내가 보살피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감정에 휘둘리는 대신, 감정을 돌보는 삶을 선택하겠다고 마음먹은 날부터, 나는 조금 더 건강한 간호사가 되었다. 내 감정을 알아주는 일이 매우 힘들지만 또 그만큼 나를 위한 일이 없다. 내 감정을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 나를 위한 시간을 자기 전 가져주는 것 그것만으로 감정을 달래는 가장 강력한 출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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