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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리통 있는 날의 교대근무

by 행복한ally 2025. 5. 21.

생리통 있는 날의 교대근무
생리통 있는 날의 교대근무



[Before] 출근 전, 진통제 하나에 의지한 아침


아침 6시 30분. 알람 소리에 겨우 눈을 떴을 때, 이미 아랫배가 싸늘하게 당기기 시작했다. 그 특유의 묵직하고 짓누르는 통증이 천천히 몸을 잠식해 온다. 생리 첫날이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버겁지만, 간호사에게 ‘컨디션 난조’는 근무의 사유가 되지 않는다. 생리휴가란 말은 현실과 동떨어진 단어처럼 느껴질 뿐, 특히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에겐 더더욱 그렇다. 결국 나는 오늘도 익숙한 루틴대로 진통제를 삼키고, 따뜻한 물로 넘긴다. 온몸은 무겁고 아프지만, 오늘 하루 돌보게 될 환자들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그날따라 옷을 고르는 시간도 길어지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바나나 하나를 겨우 입에 물고 나온다.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진통제가 조금씩 듣기 시작하면서 통증이 누그러지는 듯했지만, 안도의 숨을 쉬기도 전에 머릿속엔 이미 수액 교체 순서, 인계사항이 스쳐간다. 이 통증이 오늘 내 하루에 얼마나 영향을 줄지, 몇 번이나 식은땀을 흘리게 만들지, 예측할 수 없지만 병동을 향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늘 그렇듯이. 나의 아픔보다 더 급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나는 간호사다. 내가 아프다고 해서, 누군가의 돌봄은 멈출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 돌봄은 때로 내 통증을 미뤄야만 가능해진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During]  출근 후, 통증을 안고 일하는 시간, 그러나 멈출 수 없는 손


출근 후 인계를 받고 나면 곧바로 업무가 시작된다. 활력 징후 체크, 수액 교체, 채혈과 투약, 보호자 응대까지 정말 쉴 틈이 없다. 생리통이 시작된 날, 무거운 몸을 끌고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티 내지 않으려 애쓴다. 주위에 피해를 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속은 말 그대로 뒤집힌다. 배는 계속 아프고, 식은땀은 이마를 타고 흐르고, 때로는 구역질이 올라올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더 힘든 건 화장실에 자주 가야 한다는 사실. 평소라면 화장실에 자주 갈 수가 없다. 어느 정도 내가 그걸 조절할 수도 있는데, 생리를 하는 날들은 그럴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생리대를 갈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탈의실을 드나들 수 없어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마련한다. 양쪽 주머니에 티 안 나게 생리대를 그득하게 담아두고 시간 나는 족족 화장실에 들려준다. 이렇게 근무 중에 생리를 하면 내가 가진 모든 힘을 써버리는 듯하다. 그럼에도 손은 멈출 수 없다. 아픈 환자가 울고 있고, 수술실로 가야 할 환자는 예정 시간에 맞춰 준비되어야 한다. 나 자신을 돌보는 일보다, 환자를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하루. 다리에 힘이 풀릴 듯한 순간에도 마스크 속 입꼬리를 올리며 "괜찮아요"를 반복하는 나를 문득, 거울로 마주치게 된다. 그때마다 잠깐 멈추고 생각한다. 이건 정말 괜찮은 걸까?



[After] 퇴근 후, 잔잔히 남는 통증과 감정


오후 3시 반, 교대 인계를 마치고 간신히 병동을 나섰다. 몸은 휘청이고, 마음은 더 휘청인다. 하루를 버텨낸 안도감과 동시에, 내 몸을 너무 오래 방치했다는 자책감이 스친다. 화장실에 가야하는 시간, 진통제를 먹고 버틸 수 있는 시간, 평소에 내가 계산하던 것에 이런 것까지 더해 생각해야 한다는 게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통증에 그렇게 민감했던 내가, 정작 내 통증에는 무심했다는 걸 깨닫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고 소파에 눕는다. 배를 움켜쥐고 천장을 바라보며 잠시 눈을 감는다. 그래도 오늘도 실수 없이, 문제없이 하루를 마쳤다는 생각에 스스로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 "고생했어. 오늘도 잘 버텼어." 내 통증을 잘 버텨가며 다른 사람의 통증을 케어한 오늘.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 걸까? 왜 이렇게 일이 힘든 걸까?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그냥 무턱대고 이렇게 날 힘들게 하는 생리라는 이놈.. 너란 놈 너무 밉다. 그래도 나를 위로해 주는 건, 이게 나만의 힘듦은 아니라는 사실. 나의 동료들도 이런 고통을 함께 느끼기에 진심 어린 걱정과 위로를 보내준다는 사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괜찮냐고 걱정해 주는 동료들의 한마디가 날 집까지 데려다준 듯했다. 나는 간호사이기 전에 한 사람이고, 돌봄은 타인만이 아닌 내게도 필요한 일이라는 걸 다시 기억하며,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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