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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일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by 행복한ally 2025. 5. 14.

슬픈 일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슬픈 일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끝내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

병원은 늘 이별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환자의 입퇴원이 반복되고 환자를 영원의 공간으로 보내기도 한다.

환자는 언제나 우리를 떠난다. 

하지만 그 사실에 무뎌지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처음 환자의 죽음을 목격했을 때, 나는 온몸이 얼어붙는 줄 알았다. 

보호자의 울음, 침대 위의 차가운 손, 눌러 담은 인계 메모까지. 

모든 것이 선명하게 남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런 일은 반복되었고, 

어느새 내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손은 침착하게 장례절차를 안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 어딘가는 여전히 덜컥거린다.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게 퇴근했는데, 

집에 와서 식탁에 앉은 순간 눈물이 터진다. 

오늘 하루도 누군가에게는 마지막이었고, 

나는 그 마지막을 지켜봤다. 

그건 결코 '일'처럼만 다뤄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음한켠이 무거운 느낌 그리고 그 느낌을 자주 느껴야 하는 일.

그 일이 바로 내가 하는일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주, 나는 이별의 순간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도 그 장면에 익숙해진 적이 없다. 

슬픔은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견디는 것이다. 

그 무게에 눌리지 않기 위해 어딘가에 그 감정을 살짝 내려놓을 뿐이다. 

병동에서 일어난 죽음은 기록으로만 남는 게 아니다. 

그것은 간호사의 가슴 한켠에 작은 생채기처럼 남는다. 

그리고 그런 작은 흔적이 모여, 언젠가는 나를 무너뜨릴 수 있음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내가 하는 일이 힘들고,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매일을 고민하게 만드는 일이다.



감정이 무뎌질까 봐 더 두려운 날들

가끔은 나 자신이 너무 차갑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오늘 또 한 명의 환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나의 하루는 그대로 흘러간다.

바빠서 울 시간이 없었다. 그 감정에 내 다른 환자의 시간을 묻어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 환자의 약을 준비해야 했고, 보호자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해야 했다.

그래서 더 무섭다. 내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굴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건 아닐까.

다른사람에게 죽음은 살면서 몇 겪지 않는 특별한 일인데,

간호사는 그 특별함이 비특이한일이 되어 업이 되어버린다. 

감정이 마모되고, 공감이 기능처럼 굳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든다.

나는 매일 그 경계에 서 있는 느낌이다.

너무 오래 이 공간에 머무르면, 나도 결국 이 공간처럼 차가워지는 건 아닐까.

그러지 않으려면, 내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아무 일 없는 척하지 않고, 잠시라도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무감각해지는 건 생존이 아니라, 소멸일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작은 감정이라도 붙잡는다. 

환자의 손을 잡았던 촉감, 마지막 눈인사, 보호자의 떨리는 고개. 

그 감정들을 억누르지 않고, 잠깐이라도 꺼내본다. 

다정한 말 한 마디가 나에게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퇴근길에 나 자신에게 말을 건다. 

"그래도 오늘, 잘 버텼어." 

슬픔을 부정하지 않으면, 내가 조금 더 사람에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나는 기계가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래서,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 경계에서 나는 항상 저울질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마음을 들여다본다

나는 간호사다.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지만,

동시에 이별을 맞는 자리에도 늘 함께한다.

그래서 더더욱 감정을 정리하고 마주하는 일이 중요하다.

매일 감정노동의 연속인 이 일을 하며, 나는 내가 인간임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 하루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런데 한편으론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야 나의 일은 마무리가 된다.

그 가운데에 내가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래서 하루에 한 번은 나에게 묻는다.

"괜찮았어? 힘들지 않았어?"

그리고 그 물음에 조용히 대답한다.

"슬펐어. 오늘도."

그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마음 한 켠에 놓아두는 일.

그것이 내가 나를 지키는 방식이다.

슬픈 일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여전히 사람의 감정을 가진 간호사로 남기를,

나는 매일 바라고 또 다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젠가는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내 옆에 있는 동료가, 혹은 미래의 후배가 비슷한 슬픔을 겪게 되었을 때, 

내가 그들의 곁에서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나는 아직도 슬퍼. 그게 당연한 거야." 

감정은 약함이 아니라, 생명과 함께하는 우리의 직업이 지닌 깊이임을. 

감정이 있다는 건 돌보고 있다는 뜻이고, 그 돌봄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시작된다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감정의 무게를 짊어진 채 이 길을 걸어간다. 

사람이 사람을 지키는 일. 

그것이 간호사의 길이라면, 나는 기꺼이 이 마음을 들고 걸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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