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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어려운 화장실, 간호사의 일상

by 행복한ally 2025. 5. 16.

밥보다 어려운 화장실, 간호사의 일상
밥보다 어려운 화장실, 간호사의 일상


1]  언제부턴가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를 본다.

누구나 사람이라면 생리적인 욕구는 자연스럽다. 하지만 간호사로 일하며 내가 가장 자주 참는 건 '화장실'이었다. 왜 화장실을 참는지 이해가 안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혹은 바빠서겠지 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도 얼마나 바쁜지까지는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급하게 일을 마무리하고 나면 화장실에 가려던 찰나 호출벨이 울리고, 환자가 넘어진다. 이러한 상황의 연속에서 화장실? 글쎄... 응급상황이면 화장실은 정말 사치를 넘어선 금기다. 다행히 응급상황에서는 화장실 가고싶은 생각이 나오다가도 다시 들어가고 생각이 기억속에서 조차 사라진다.

처음엔 잠깐 참는 게 일상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잠깐이 몇 시간으로 늘어나고, 어느샌가 근무 내내 화장실을 가지 않게 되는 날도 생겼다. 심지어 나중에는 '쉬는 타이밍'이 오히려 불안해질 정도였다. 그 시간이 생기면 일이 몰아치는 징조였기 때문이다. 나는 병동 한쪽 화장실 앞에서 몇 번이나 들어갈까 말까 망설였다. 누가 부르면 어쩌지, 지금 가도 되나, 이 타이밍이 맞나. 그렇게 나는 '인간'이 아니라 '반응형 업무 단말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불쌍한 생활이다. 그리고 다른 시선으로 보면 이렇게 우끼는 일이 있을 수 있나 싶다. 그렇다 이 화장실이, 화장실에 가는 게 이렇게 눈치 보이는 일이라는 걸 이 일을 하기 전에는 몰랐다.

 


2] 생리통도, 소변도, 참는 게 익숙해진 몸

가장 참기 힘든 건 생리통이 있는 날이었다. 정말 그럴땐 생리통이 없는 사람들이 세상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아랫배가 싸늘하게 차오르고, 어지럽고, 식은땀이 났다. 이러다 내가 금방 어떻게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온 몸을 감싼다. 그래도 환자의 상태가 더 급하면 내 몸은 뒤로 밀렸다. 진통제 얼른 하나 삼키고, 팔뚝에 핏줄이 돌도록 바쁘게 움직였다. 어떤 날은 이틀째 화장실을 참은 날도 있었다. ‘지금 비우면 동료가 힘들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공백이 생긴다’는 생각에 매번 우선순위를 미뤘다. 같은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참 미련하고 답답해 보일 수 있을지 모르는 생각이지만, 우리는 그렇다. 간호사로 일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일하냐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우리는 이렇게 일하는게 당연하다. 이런식으로 매일을살아냈다. 그러다보니 내 몸은 신호를 보내는 걸 멈춰버렸다. 화장실 신호도, 아픈 감각도 무뎌졌다. 내 몸은 뭔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그건 돌봄이 아니라 방치였고, 프로페셔널함이 아니라 무감각이었다. 간호사라는 직업은 누군가의 몸을 살피는 일이지만, 그만큼 자신의 몸을 소홀히 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장 소중하게 나를 다뤄야하는 내가, 내가 하는 일로 인해서 나를 가장 아프게 하고 있다. 그 역설이 나를 가장 아프게 했다.

 

3] 나의 생리적 권리를 지키는 연습

 

나는 이제 조금씩이라도 달라지고 싶었다. 달라지지 않는다면 내가 너무 나를 홀대하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렇게 일하는것에 창피함과 후회는 없지만 발전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주 작은 실천부터 시작했다. 생리 첫날은 미리 동료와 근무 조율을 요청했다. 이게 가장 유효한 일이었다. 모두가 같은 상황을 겪는 처지라 이러한 업무조율은 다행히 늘 쉬웠다. 그리고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편하려고 동료를 불편하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깨달았다. 내가 너무 불편하면 그건 결국 동료에게도, 환자에게도 좋지 않다는 걸. 그래서 화장실을 가지 않아서 힘든 날엔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잠깐만 다녀올게요.” 이 한마디가 나를 사람답게 만들었다. 내 생리적 감각을 지켜내는 일이, 나를 전문직으로서 지속 가능하게 해주는 기초 체력임을 알게 됐다. 아직도 완벽하게 바뀌진 않았다. 여전히 참는 날도 많고, 눈치 보는 순간도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연습하고 있다. 내 몸을 돌보는 사람이 되는 법을. 내가 내 몸을 돌보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 돌봐주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화장실에 가는 일, 아프다고 말하는 일, 잠깐이라도 숨 고르는 일. 이 당연한 생리적 권리를 지키는 일이야말로, 내가 나를 간호하는 첫걸음이다. 이 작은 실천이 쌓이면, 나는 내 일을 더 오래, 더 건강하게 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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