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문단 – "괜찮으세요?"라는 질문 하나도 조심스럽게
처음에는 아무렇지 않게 던졌던 말들이, 어느 순간부터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괜찮으세요?”라는 질문조차 환자에게는 때론 무심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한 환자의 표정 덕분이었다. 수술 직후 통증으로 힘겨워하던 분에게 그렇게 묻자, 그분은 고개를 돌리며 속삭였다. “하, 제가 괜찮아 보이세요…?” 그 말에 나는 '헉'하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내 의도는 따뜻한 배려였지만, 그분에겐 상처로 들렸던 것이다. 내가 말투를 잘 못했나? 라는 생각을 계속하게되었고 수술을 하고 난 환자에게 상처로 다가왔을 내 말투가 조금 죄송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말을 하나 고르더라도 더 신중해지기 시작했다. 단어를 줄이기보다 감정을 줄이기로 했다. “지금 많이 힘드시죠. 도와드릴게요.” “잠깐 누워계시는 동안 제가 다 볼게요.” 같은 말도, 어투와 타이밍이 달라지면 환자의 얼굴이 달라졌다. 간호는 손으로만 하는 일이 아니었다. 입과 눈과 마음으로 하는 일이기도 했다. 말을 잘하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다. 아니, 말을 잘 고르는 간호사 말이다. 언젠가 누군가의 아픔을 ‘조금은 덜게 해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인정하며 나는 내 앞날을 다시 그리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간호사의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두 번째 문단 – 말의 높이보다, 말의 온도를 배웠다
간호사로서 익숙해질수록, 말의 높이보다 말의 온도가 중요하다는 걸 더 실감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주사를 놓고, 체온을 재고, 수액을 갈면서 마주치는 환자와 보호자들은 각기 다른 감정 상태를 갖고 있다. 어떤 이는 불안으로, 어떤 이는 분노로, 또 다른 이는 슬픔으로 병실을 채운다. 그런 이들에게 간호사의 말은 감정을 진정시키는 온도 조절기 같은 역할을 한다. “왜 그렇게 느끼셨어요?”라고 묻는 대신 “그렇게 느끼실 수 있었겠다”는 말로 바꿨을 때,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지는 걸 여러 번 체험했다. 특히 보호자의 날 선 말에 반응하지 않고, 오히려 감정을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대응하면, 갈등은 사라지고 신뢰가 생긴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선택도 중요하다. 침묵으로 공감하는 순간이 더 깊은 위로가 될 때도 있다. 간호사의 말은 환자를 치료하지 못한다. 하지만 간호사의 말은 환자가 치료를 받아들이게 도와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의 온도를 조절하는 연습을 한다. 차갑지 않게, 뜨겁지 않게. 따뜻하게, 아주 따뜻하게. 나의 이런 노력이 그들에게 더 따뜻한 공감과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들의 회복에 내가 적게 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게 바로 간호사가 아닐가 나는 오늘도 다시 한번 되뇌인다.
세 번째 문단 – 간호사의 말은, 결국 환자의 마음을 돌본다
“선생님, 저 어제 선생님 말 덕분에 마음이 편했어요.” 어느 날 한 환자가 퇴원하며 남긴 이 한마디는 지금도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 나는 그날 어떤 말을 했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특히나 많은 의미를 두고 한 말이 아니기에 더더욱 그러하다. 또한 환자 한명한명에게 한 모든 말을 다 기억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바쁜 업무를 같이 소화하는 간호사들의 일의 특성 상 기억이 나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었다. 다만,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것이 있다면 걱정이 많아 보이던 그 환자에게 “지금까지 잘해 오셨고, 분명히 더 좋아질 거예요”라고 말했던 것 같다. 말은 사라지지만, 말의 온도는 남는다. 우리는 매일 환자의 생체 신호만이 아니라, 감정의 파동을 함께 읽는다. 그래서 간호사의 언어는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치료의 한 과정이자, 마음의 간호다. 말을 아끼는 날도 있고, 과하게 내뱉고 후회하는 날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언어의 시행착오 속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말 한마디로 울고, 또 말 한마디로 웃게 만드는 이 병실 속에서, 나는 매일 언어를 연습하고 또 배운다. 간호사의 말은 기록되지 않지만, 누군가의 기억에는 남는다. 그 기억으로 그 누군가는 오래 행복할 수도, 기력을 금방 회복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말, 그 하나를 더 찾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