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장면 – "정말 괜찮아요, 선생님"
처음 병동에 투입된 지 일주일쯤 됐을 때였다.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고 두려움이었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확신도 없고 자신감은 바닥을 치던 시절, 무엇 하나도 익숙하지 않아 매일 실수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했다. 어느 날, 수액 교체를 하다 실수로 주사 바늘을 잘못 연결해 수액이 바닥에 쏟아졌고, 환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정신없이 뒤처리를 하던 찰나, 환자가 조용히 말했다. “정말 괜찮아요, 선생님. 저는 선생님이 내 곁에 있어서 마음이 편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내가 지금 이 상황에 들은 말이 정말 맞는 건가?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들리길 원하는 내 환상인가?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했다. 나는 실수만 가득한 간호사라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환자도 있구나.. 게다가 내가 누군가에게는 ‘곁에 있어 편안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그 말은 나에게 간호사로서의 첫 보람이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만든 위로였다.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구나 하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매일 하던 실수는 갑자기 사라졌고, 자신감과 당당함이 내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이렇게까지 내가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나도 나를 모를 정도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시작했다. 환자의 그 마음 편하다는 한마디가 나를 180도, 아니 360도 변하게 만들었다.
📍 두 번째 장면 – "그 말 한마디 덕분에 버텼어요"
간호간병통합병동으로 병동이 바뀌게 되면서 환자들 역시 다른 과 입원이 늘어나게 되었는데 나는 이 때 전에는 상대하지 못했던 암환자들을 갑자기 많이 만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암이라는 어둠의 병을 가진 환자들을 케어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나 자신이 점점 힘들어짐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이 시기에 오래 입원 중인 암환자 한 명이 있었다.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보호자와 의료진 모두 지쳐가던 어느 날, 나는 말없이 환자의 손을 잡고 잠시 머물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그분은 퇴원 전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날 선생님이 제 손 잡아줬을 때, 진심으로 버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내가 한 말이 뭔지 기억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뒤돌아 봐도 내가 손잡아 준 기억 밖에 없었다. 그렇다. 기억에도 없는 그 짧은 찰나의 환자에게 한 위로였지만, 누군가에겐 그 손길 하나가 희망이었던 것이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저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보람. 그날 이후로 나는 ‘작은 진심이 큰 위로가 된다’는 말을 믿게 됐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 덕분에 버텼다는 환자의 말이 내 마음에 울림이 되어 나는 내가 하는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며 희망이 될 수 있는지 다시금 간호사란 직업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 세 번째 장면 – "그 간호사 덕분에 나았어요"
병원 칭찬글에 올라온 한 보호자의 감사 글을 우연히 보게 됐다. 이런 감사의 글이 병동에 오게 되면 우리는 모두 관심을 집중한다. 누구에게 칭찬한 글인지, 그리고 무엇을 칭찬했는지.. 글을 쭉 읽어내려가던 중 나는 이름은 없었지만, 상황과 표현을 보니 내가 담당했던 아이 환자의 이야기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입원 기간 내내 울음을 멈추지 않던 아이가 퇴원 전날 웃었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나기 때문이다. 보호자가 적은 내용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그 간호사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아이가 병원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나을 수 있었어요.” 그 글을 읽는 순간, 눈시울이 붉어졌다. 매일을 울기만 한 어린아이가 딱하기도 하고 밉기도 하고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 아이와 함께 주사기로 장난을 치며 함께 놀아준 일이 뇌리에 스쳤다. 주사기만 보면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가 너무 불쌍해서 주사기에 물을 담아 함께 놀아준 것이었다. 그런데 나 때문에 나을 수 있었다니... 너무 울고 보채서 잠깐이나마 미워했던 나 자신이 보잘것 없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이에게 고마웠다. 그래도 병원을 그토록 싫어했던 감정이 내가 했던 작은 노력으로 극복이 되었나 싶었기 때문이다. 보람이란 이런 것일까. 고생 끝에 누군가의 기억 속에 ‘고마운 사람’으로 남는 것. 간호사는 기록보다 기억에 남는 직업이라는 말을 실감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