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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하루, 세 개의 대화로 남다

by 행복한ally 2025. 5. 27.


😊  첫 번째 대화 – “언제 퇴원해요?”

나의 하루, 세 개의 대화로 남다
나의 하루, 세 개의 대화로 남다


오전 8시 35분, 첫 회진 직후였다. 병실을 돌며 활력 징후를 체크하던 중, 6인실 창가 앞의 한 환자가 조심스럽게 나를 불렀다. “선생님, 저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까요?” 축처진 어깨에 힘없는 말투, 그 말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었다. 오랜 입원 생활에서 오는 지침, 회복에 대한 조급함, 그리고 가족과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모두 섞인 질문이었다. 나는 그 마음을 어느정도 이해하지만 전부 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힘든 마음을 다 안다고 말하는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위로겠지만 간호사는 그렇지 않다. 때문에 알면서도 바로 답할 수 없었다. 주치의의 퇴원 판단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고, 몇 가지 검사 결과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신 말했다. “아직은 확실치 않지만, 오늘 결과 보고 꼭 다시 설명드릴게요.” 그에 환자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불안했다. 나는 그 눈빛을 보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정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간호사로서의 나의 역할은 때때로 확신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함 속에서 함께 기다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 그날 이후, 나는 환자에게 가능한 한 빠르게 소식을 전해주는 습관을 들였다. 작은 것이지만, 기다림 속에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그날의 한 마디가 나를 바꿨고, 나는 그때의 그 환자를 아직도 기억한다. 말 한마디로 시작된 환자와의 신뢰는 내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  두 번째 대화 – “조금만 잡아주세요…”


오후 1시 50분, 주사실에서 항암 치료를 위해 혈관을 잡는 순간이었다. 팔을 내민 환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선생님, 저 좀 무서워요… 조금만 천천히 잡아주세요.” 그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등을 감싸쥐고 눈을 맞췄다. “괜찮아요, 제가 최대한 잘 해볼게요. 혹시 이전에 많이 힘들었던 경험 있으셨나요?” 그렇게 시작된 짧은 대화는 단순한 처치 전 확인이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만지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흔히 주사를 놓는 일, 수액을 연결하는 일을 단순한 루틴이라 생각하지만, 환자에게는 하루 중 가장 긴장되고 예민한 순간일 수 있다. 특히나 항암 치료를 받는 분들에겐 손등 하나가 아프고, 팔뚝 하나가 성치 않은 경우가 많기에 그들의 불안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다. 그래서 더욱 환자의 말에 귀기울이고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나는 그 뒤로 환자가 “무섭다”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먼저 말한다. “괜찮아요. 천천히 해드릴게요. 손 따뜻하게 덮어드릴까요?” 그 짧은 말 한마디와 손끝의 온기는 환자의 긴장을 눈에 띄게 누그러뜨려지게 했다. 그날 환자는 치료를 무사히 마쳤고,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덕분에 오늘은 괜찮았어요.” 나는 그 말을 기억하고, 다시 내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간호사의 손끝은 단지 기술을 수행하는 도구가 아니다. 누군가의 공포를 덜어주는 마음의 연장선이라는 걸.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손끝에 마음을 실어 환자에게 닿는다. 

😊  세 번째 대화 – “그 간호사 덕분에 나았어요”


오후 5시 무렵, 퇴근 준비를 하려던 찰나, 스테이션으로 좋은 소식이 도착했다는 말을 들었다. 병원 내부 게시판에 올라온 보호자의 칭찬글이었다. 바쁜 근무 속에서 잠깐 커피 한 모금의 여유만큼이나 간호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런 ‘말 한 줄’일지도 모른다. 제목엔 이름이 없었지만, 내용을 읽자마자 알 수 있었다. 글 속의 주인공은 나였다. 입원 내내 낯설고 두려운 병원 환경에 울기만 하던 아기 환자, 주사기를 보기만 해도 눈물을 터뜨렸던 그 아이. 나는 어떻게든 아이를 달래고 싶어 장난감 대신 주사기에 물을 담아 장난처럼 놀기도 했고, 얼굴에 인형 스티커를 붙여가며 웃음을 유도했다. 보호자는 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그 간호사 선생님 덕분에 우리 아이가 병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어요. 지금은 ‘간호사 선생님 보러 병원 가자’고 할 정도예요.” 그 순간 나는 울컥했다.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며 했던 사소한 노력들이 누군가에겐 감사의 기억이 되었다는 것. 간호사는 병을 낫게 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마음을 치유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기록보다 오래 남는 기억, 숫자보다 깊게 박히는 표정과 말투. 간호사는 그렇게 환자의 기억 속에 남는다. 그래서 오늘도 그 기억을 하나 더 쌓기 위해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병동으로 향한다. 이게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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