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병동에 들어섰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다
처음 병동에 발을 들인 날, 내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이 낯설었다. 기계마다 쉴 새 없이 깜빡이는 불빛, 복도마다 퍼지는 특유의 소독약 냄새, 매트리스 위에 무표정하게 누워 있는 환자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보호자들의 조심스러운 눈빛. 복도 끝에서는 알람이 울리고, 어딘가에선 호출벨이 끊임없이 켜졌다. 그 속에서 나는 마치 잘못 들어선 공간에 있는 사람처럼, 손끝 하나 제대로 움직이기도 조심스러웠다. 처음으로 배정받은 임무는 단순한 수액 확인이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일이지만, 당시의 나는 그 투명한 액체 속에서도 실수를 찾아내는 것 같아 괜히 숨이 막혔다. 손은 땀에 젖어 있었고, 환자가 묻는 간단한 질문에도 더듬거리며 얼버무리기 바빴다.
나의 긴장과 미숙함은 고스란히 행동으로 드러났고, 말투에서도 여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체온계를 들고 방에 들어서면서도 "실례합니다"라는 인사가 입술에서 맴돌다 사라졌고, 웃음 지으려 애써도 굳은 얼굴이 먼저 앞섰다. 하루를 버티고 나면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눈물이 핑 돌았다. 환자 앞에서는 최대한 감추려 애썼지만, 탈의실이나 화장실 거울 앞에서는 울컥하는 감정을 다스릴 수 없던 날도 많았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인 줄 알았지만, 정작 그 공간에서 나는 이질감만 가득 느꼈다. 병동은 복잡했고, 사람들의 발걸음은 분주했으며, 환자들의 상태는 내 짧은 지식으로는 감당이 어려웠다.
가장 무서웠던 건, ‘내가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이었다. 괜한 손놀림 하나가 누군가의 고통을 키우거나, 작은 실수가 큰 문제로 이어질까 봐 언제나 마음속은 죄책감으로 무거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는 게 없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했다. 출근길에는 입술을 꼭 깨물며 다짐했고, 퇴근길에는 자책과 후회로 가득했다. 그렇게 나는 매일 같은 병동, 같은 복도 안에서 낯섦과 긴장을 껴안은 채, 나 자신을 다그치며 조심조심 하루를 버텼다.
익숙해진 병실, 변화한 나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나를 바꿔 놓았다. 처음엔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반복되는 근무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환자의 숨소리를 먼저 알아채게 되었고, 얼굴빛이나 말투만으로 통증의 강도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호출벨이 울리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발이 먼저 움직였고, 응급상황에서도 더 이상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내가 해야 할 일부터 찾게 되었다. 긴장과 불안 대신 책임감과 신뢰가 자리를 잡았고, 그 안에서 나는 간호사로서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이제 곧 신규티를 벗어나는 것만 같았다.
병동은 여전히 바쁘고 예측할 수 없는 공간이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크고 작은 변수들이 매일 벌어진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들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긴장 속에서도 내 자리를 지키며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다. 예전 같았으면 무너지거나 주저앉았을 상황에서, 이제는 동료를 먼저 챙기고 환자의 손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간혹 선배가 미소를 지어 보낼 때마다 조용한 격려를 받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나 자신을 가끔씩 칭찬해주었다.
낯설기만 하던 그 병실은 이제 내가 가장 편안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익숙한 환자들의 얼굴, 눈인사 한 번으로 전해지는 고마움, 보호자의 안도하는 미소, 그리고 동료와의 짧은 농담 하나까지.. 그 모든 것이 매일을 견디게 했고, 나를 간호사로 완성시켜 주었다. 병실이라는 공간은 더 이상 단순한 ‘근무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내 마음을 담아 누군가의 하루에 스며드는 삶의 무대이자, 내가 단단해질 수 있었던 훈련장이며, 동시에 내가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자리였다. 병원은 이제 그런 곳이 되었다.
연결되는 마음, 작지만 깊은 울림
가끔은 퇴근 후 생각에 잠긴다. 오늘 내가 건넨 말, 나도 모르게 닿은 손길, 스치듯 본 환자의 표정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같은 말을 반복하고,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하루였지만, 그 하루 속의 작은 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울림이 될 수도 있었을까. 물 한 잔을 건네며 “천천히 드세요”라는 말을 덧붙였던 일, 퉁명스럽던 환자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졌던 그 장면, 무심코 팔을 살짝 받쳐드린 손길 하나조차도 누군가에겐 오늘 하루를 견디게 만든 힘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말보다 더 많은 위로를, 말없이 주고받고 있다.
어떤 날은 그저 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환자가 눈을 맞추며 미소 짓는다. 그럴 때면 나는 깨닫는다. 간호라는 일은 복잡한 의학 지식과 기술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간호는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를 잇는 일이다. 통증을 덜어주는 손길, 불안함을 낮추는 말투, 지친 보호자에게 건네는 조용한 눈빛 하나가 그들에겐 치료 그 이상이 된다. 우리는 무언가를 ‘치료한다’기보다는, 환자의 시간을 함께 ‘지나가 준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다. 그 시간 동안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나누는 기술이야말로 간호사의 가장 큰 무기다.
낯설었던 병실이 익숙해지고, 무기력했던 내가 누군가의 희망이 되는 순간들을 하나하나 쌓아가는 지금.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나의 하루는 늘 누군가와 이어져 있고, 그 마음들은 작지만 단단하게 나를 이끌어준다. 결국 간호란, 사람을 향한 마음이 얼마나 진심이냐는 것. 그 마음이 손끝에서 전해지고, 시간이 지나도 기억되는 따뜻한 울림이 되는 것. 그래서 오늘도 나는 다시 병실로 향한다. 또 한 사람의 하루에 조용히 스며들기 위해, 그들과 연결된 마음을 내 안에 품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