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y 근무 전 – 눈은 떴지만 마음은 아직 침대에
하루를 여는 간호사의 출근은 언제나 가장 버겁다. 더군다나 데이근무는 다른 근무에 비해 더 더욱 그렇다. 아침 5시 00분, 겨우 눈을 떠 몸을 일으키지만 마음은 여전히 침대에 붙들려 있다. 눈꺼풀은 무겁고, 하루를 온전히 감당할 준비는 되지 않은 채 세면대로 향한다. 일어나서 준비 후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한시간 반이라는 시간이 더 남아있다. 지하철에 몸을 싣고 앉아 병동에서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면, 미리 긴장감이 올라온다. 어제 내가 보았던 환자들의 상태를 떠올리며 그 환자 상태는 악화되지 않았을까, 오늘 인계받을 일은 어떨까, 큰 이벤트는 없었을까?, 오늘 expire 하는 환자가 오진 않았을까?, 오늘도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들이 내 머리속을 휘몰아친다. 언제나 그렇듯이 커피를 들고 출근하는 발걸음은 무겁지만,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 가장 큰 마음은 ‘오늘은 괜찮았으면’ 하는 조용한 바람이다. 수백만가지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하루를 걱정하지만 그 끝에는 결국 조용히 오늘을 마무리 할 수 있도록 하는 기도였다. 동이 터오른다. 하루를 가장 먼저 시작하는 간호사의 아침은, 늘 이런 식이다. 저 깊은곳에 웅크리고 있는마음을 끌어내어 기지개를 시키고 어르고 달래어 출근시키는 일부터가 시작이다.
🌇 Evening 근무 전 – 일상의 중간에서 마음을 다시 묶는다
오후 근무는 하루의 리듬을 끊어 놓는다. 오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내고 나면, 그 중간에서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데이 근무에 모든 주요한 이벤트들이 다 펼쳐지고, 이브닝 근무는 그 하루를 마무리하는 듀티다. 그런 이유로 이브닝 근무를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항상 조용히 끝나는 이브닝은 없다. 나를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것처럼 병동은 늘 새로운 사건을 내민다. 낮 동안 있었던 크고 작은 변수들이 여전히 병실 곳곳에 살아 있고, 데이 근무자들이 “오늘도 정신없었어요” 한마디 남기고 퇴근할 때 나는 그 뒤를 조용히 이어받는다.
환자의 상태는 변화 중이고, 퇴근을 앞둔 팀원들의 얼굴에는 이미 하루의 피로가 내려앉아 있다. 그 분위기를 넘겨받는 것도 이브닝의 몫이다. 근무표에서 이브닝이 다가올수록 나는 어느새 마음을 다잡기 시작한다. 특히 해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 세상은 저물어가고 있지만 병동은 또 다른 하루의 막을 올린다. 다른 사람들은 집으로 향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겠지만, 나는 복도 끝 스테이션에 앉아 새로운 환자의 투약 시간을 정리하고, 보호자의 문의에 응대하며 하루의 마지막 리듬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브닝을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하루의 정리자’로 받아들인다. 가라앉은 긴장감, 하지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주의력, 그 사이에서 조용히 중심을 잡는다. 억지로라도 웃는 얼굴을 만들고, 입술에 립밤을 바르며 마음을 단단히 묶는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이 입가를 맴돌고, 그 말 하나에 온 마음을 실어 출근 준비를 한다. 이브닝 근무는 나에게 하루의 두 번째 출근이지만, 동시에 간호사로서의 균형 감각을 가장 많이 요구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두시가 되면 나는 늘 같은 다짐을 되뇌인다. 오늘도 나로 인해, 누군가의 하루가 조금은 편안했으면.
🌙 Night 근무 전 – 고요한 밤 앞에서의 작고 단단한 결심
밤근무를 앞두면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해진다. 모두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들 준비를 할 시간, 나는 나만의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한다. 창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며 눈을 뜨듯 내 마음도 천천히 깨어난다. 간단히 샤워를 하고, 스트레칭을 하며 몸의 긴장을 푼다. 그리곤 생각한다. ‘오늘 밤은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까?’ 나이트 근무는 늘 예측 불가능하다. 겉으론 고요하지만, 그 안엔 언제든 긴장을 깨울 수 있는 변화들이 숨어 있다. 작게 놓친 하나가 큰 위기로 번지지 않도록, 나는 나의 집중력을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근무 전, 커피보다 진한 마음가짐을 챙긴다. 어두운 병동에 들어설 때, 조용히 “오늘도 잘 부탁합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넨다. 누군가는 나이트 근무가 그저 잠든 환자를 지키는 시간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밤은 ‘아무 일 없게’ 지키는 시간이며 동시에 ‘모든 내일’을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새벽이 밝기 전까지의 수많은 순간, 우리는 수액을 확인하고 기록을 정리하며, 다음 날의 입원과 수술, 인계까지 꼼꼼히 준비한다. 낮보다 덜 분주할 뿐, 결코 가볍지 않은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이 밤을 두려워하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고요한 병동 속에서 가장 단단해지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잠든 사이, 나는 또 한 번의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으로서 병동의 등불이 된다. 오늘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단 하나의 마음이다. “내일을 위해, 지금을 지킨다.” 그 마음으로 나는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이 밤을 통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