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문단 – 응급벨, 평온을 찢고 들어오는 소리
응급은 언제나 예고 없이 발생한다. 그 순간 병동의 공기는 단번에 바뀐다. 평온하던 병실이 급하게 숨을 죽이고, 간호사들의 동공은 팽창한다. 나는 순간 몸이 먼저 반응하는 나 자신을 느낀다. 간호사라면 다 같은 느낌일 것이다. 책으로 배운 매뉴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고 나를 먼저 움직이게 하는 건 직감이다. 환자의 상태를 이미 알고 있는 듯, 다리로 뛰고 손은 준비된 움직임을 향한다. 갑작스러운 혈압 저하, 의식 소실, 호흡곤란—30초 안에 이 모든 걸 판단하고 대응해야 할 때가 많다. 환자의 상태를 보면 응급상황으로 가는 길인지 완벽한 응급인지가 판가름 난다. 수많은 시나리오가 머리를 스치지만, 정작 그 순간엔 단 하나의 선택만이 가능하다. 그 선택이 맞아야, 누군가의 생명이 이어진다. 간호사는 판단이 느려도 안 되고, 흔들려도 안 된다. 그 짧은 30초가 환자의 회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응급벨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벌렁해서 찢어지는 것 같았고, 내 실수로 무언가를 놓칠까 매우 두려웠다. 하지만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나는 배웠다.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고, 먼저 눈을 보고, 손끝을 준비하는 것. 그것이 생명을 다루는 간호사의 출발점이다. 모두들 그러하겠지만 이렇게 배우며 성장한다. 사람을 살리는 방법을 터득한다.
📍 두 번째 문단 – 30초 안에 이루어지는 수천 번의 시뮬레이션
응급상황은 시계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1초는 마치 한 시간처럼 흘러간다. 한 명의 호흡이 멎는 그 순간, 간호사의 뇌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작동한다. 그렇게 작동해야만 한다. 혈압 수치, 의식 상태, 동공 반응, 최근 투약 내역, 기저질환까지—모든 정보가 머릿속에서 동시에 재생된다. 손은 심폐소생술을 위한 자세를 취하고, 다른 한 손은 콜벨을 눌러 의료진을 호출한다. 콜벨이 있지 않는 곳이라면 내가 평소에 이렇게 크게 말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동료를 부른다. 이것은 말 그대로 ‘생존의 기술’이다. 그러한 반응은 절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상황을 시뮬레이션하고, 머릿속으로 수천 번의 훈련을 해온 결과다. 환자의 숨소리 하나로 ‘지금 아니다’라는 느낌이 들 때, 나는 움직인다. “왜 움직였냐”는 질문에 “그냥 느낌이 이상했어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순간도 많다. 그래서 간호사 일을 하는 건가 보다. 간호사는 매 순간 데이터를 읽고, 감각을 곱씹고, 결국 감정을 억누른 채 손을 움직인다. 그 30초는 혼자만의 시간이 아니다. 동료들과의 눈빛 교환, 바로 이어질 코드 상황, 의사의 판단까지 연결되는 팀워크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 팀워크의 출발점이 간호사라는 사실은, 여전히 나를 두렵게도, 자랑스럽게도 만든다. 사람을 이렇게 살려내면서 느낄 수 있는 이 마음, 내가 이 힘들고 고된 일을 지속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세 번째 문단 – 무사히 지나간 후에야 찾아오는 떨림
환자가 안정되고, 수치가 회복되고, 의식이 돌아오면 병동은 다시 조용해진다. 언제 그랬냐 싶게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서 간호사의 심장은 여전히 뛴다. 진정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입술은 말라 있다. 그제야 내가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 30초가 얼마나 긴장이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걸었던 순간이었는지 몸이 기억한다. 그리고 절대 이 순간을 잊지 못한다. 수많은 경험에도 응급상황에 환자를 살리는 일은 절대 잊히지 않는다. 그날의 공기와 병동의 온도 하나까지가 다 머리와 가슴으로 기억된다. 그 짧은 30초가 지나고 동료와 눈을 마주치면 말없이 웃는다. ‘살았다’는 안도, ‘잘했어’라는 격려가 그 눈빛 안에 있다. 응급 상황은 다시 일어날 것이고, 나는 또다시 그 30초의 시간을 맞이해야 한다. 하지만 그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한 사람의 생명을 붙잡을 수 있는 확률을 조금씩 올리고 있다는 걸 안다. 이 경험이 죽도록 싫지만, 이런 경험이 나를 한 단계 성장시키고 나를 간호사다운 간호사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하지만 응급상황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간호사는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저 단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지켜낼 수 있도록. 그래서 오늘도 나는 병동에 들어서기 전 조용히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서 있다.”